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드워드 버네이스 (문단 편집) === 과테말라 쿠데타 === 무슨 홍보 전문가가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했을까 싶지만, 버네이스는 큰 역할을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독재 정부와 결탁해 현지인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과일회사인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하와이를 집어먹은 [[Dole]], 필리핀을 불구로 만든 [[델몬트]]와 더불어 플랜테이션과 정경유착으로 악명높은 기업으로 현재는 치키타로 개명하였다.]는 1950년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Jacobo Arbenz Guzman)이 [[과테말라]]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경작하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던 땅 40만 에이커(서울시 면적의 약 2.7배)를 압수당하였다.[* 처음에는 과테말라 정부에서도 정당한 값을 지불할 의향을 있었으나, 당연히 이권을 내놓기 싫었던 회사 측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값을 불렀다. 물론, 무상몰수는 아니고, 회사가 탈세를 위해 후려친 값으로 유상몰수한 것이다.][*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작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파나마병]]이 창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느라 땅을 휴경지로 놀려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버네이스에게 의뢰를 하고 역시 버네이스는 언론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좌파 정권의 위험성만을 부각시켜 윤색한 보도자료를 미국 언론에 제공하고 주요 신문의 기자와 칼럼니스트를 모아 현지 취재 일정을 짜주고 여행을 금적으로 후원했다. 심지어 그는 '과테말라 정부 지도자들의 언어를 분석한 결과, 17,000개의 단어가 소련 선전 메시지와 비슷하더라'는 학자들의 조사 결과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미국 여론은 급격하게 과테말라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갔고 결국 1954년 6월 망명 인사인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z)가 미국 [[CIA]]가 훈련시킨 200명을 이끌고 [[온두라스]] 쪽에서 국경을 넘었다. 버네이스는 이들을 '자유의 군인'이라고 일컬었다. 이 침공으로 과테말라의 구스만 정권을 전복시키고 아르마스가 이끄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이는 모두 그가 홍보를 담당했던 유통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벌인 일이었기에 일각에서는 버네이스를 가리켜 선전과 홍보의 아버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암살자'로 부르며 비판하기도 한다.[* 이 나라의 쿠데타 실상을 보고 [[체 게바라]]는 미국에 대해 본격적인 환멸감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UFC는 웃기게도 [[반독점법]]에 걸려서 중남미의 철도망과 과테말라의 토지 일부를 뱉어내야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